70주년 가회동성당...국내 첫 미사 집전

성지순례 2019. 7. 28. 12:55
종로 북촌마을에 있는 가회동 성당은 올해로 본당 설립 70주년을 맞는 유서깊은 성당이다.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 곳이다. 따라서 순례지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3호선 지하철 안국역 2번 출구를 나와 전방 좌측에 헌법재판소(현재 개축 공사 중)를 바라보며 직진해야 한다. 잠시 걷다보면 오른쪽에 정독도서관이 보인다. 이어 왼쪽으로 가회동 주민센터를 지나  조금 걸으면 왼쪽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회동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 사상 첫 외국인 선교사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는 1795년 밀입국했다. 그는 그해 4월 5일 부활대축일을 맞아 북촌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서 첫 가톨릭 미사를 집전했다.

가회동 성당은 한국 교회사에서 큰 뜻을 갖고 있다. 본당 관할구역이 주 신부가 신도 강완숙 골롬바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사목 활동을 펼쳤던 곳이기 때문이다.

1945년 8.15해방 후까지 가회동 구역은 명동성당의 공소로 기능을 했다. 1949년 4월 본당 터에 살고 있던 전길헌 마리아가  집터 292.3평을 기부했고, 6월에는 명동 본당의 장금구 요한금구 주임신부를 모시고 첫 미사를 봉헌했다. 이어 9월 하순에 본당이 설립됐다. 초대 본당 주임신부는 윤형중 마태오 신부.

당시 본당의 신자 수는 40여 명에 그쳤다.
초대 본당 신부는 윤형중 마태오 신부. 6.25  한국전쟁 땐 인민일보 사옥으로 사용됐고, 인민군 철수  후에는 재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본당 건물이 부서졌다.

이후 주한미군민간원조단(AFAK)의 도움을 받아 성당 건물을 짓기 시작해 1954년 12월 3일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축성미사를 봉헌했다. 1963년 국유지 26.4평을 추가로 사들여  본당 부지를 확장했다. 1968년 6월 철근 콘크리트 슬라브식 4층 건물(연건평 179평)의 사제관을 준공햏다.  1969년 유치원을 열었고,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대자리에 본당 묘지(5만평)를 마련했다.

 1970년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의  수녀원 분원이 설치됐다. 이후 부지 29.25평을 사들여 현재의 성당 부지를 확정하고 사무실/교육관을 신축해 1999년 4월 준공했고, 11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진동에 의한 붕괴 위험이  발생함에 따라 새 성전을 지어 2013년 11월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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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